2011년 8월 30일 화요일

자격루의 원리


자격루(自擊漏)는 1434년 7월 1일 조선 세종 16년에 장영실, 김조 등과 함께 만든 물시계의 일종으로, 시간마다 종이 울리도록 한 국가 표준시계이다. 1985년 8월 9일 국보 제229호로 지정되었다. 
개요
세종 16년 해시계인 앙부일구보다 3개월 빨리 내 놓은 시계로, 흐린 날이나 밤에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해시계와는 달리 하루 종일 소리로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 장치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자격궁루, 수루, 자격 등의 명칭으로 언급된다.
물시계는 물의 증감을 통해 일정량이 모이면, 쇠구슬을 굴려 소리를 내게 하는 장치로, 1433년 조선 세종 15년 장영실 등에 의해 정해진 시간에 종과 북, 징이 저절로 울리도록 한 물시계가 처음 제작되었다. 장영실은 이 공으로 관노의 신분에서 호군으로 격상되었다. 그러나 정밀함이 떨어져 다시 제작되었으며, 1434년 세종 16년 7월 1일부터 비로소 가동을 하였다. 경회루 남쪽에 보루각이라는 세 칸의 집을 만들고, 설치를 하여 사용하였다.
문종 때 고장 나고, 단종 때에는 기존의 것을 보수하지 못하고 포기하였으며, 현재 일부 남아 있는 것은 1536년 중종 31년에 장인 박세룡(朴世龍)이 다시 제작한 것이다.
원리
위에는 물을 흘려 보내는 파수호(播水壺)를 놓고, 아래에는 물을 받는 수수호(受水壺)를 놓는다. 단지 위에는 길이 3.42m, 너비 18cm, 깊이 12cm의 네모진 나무를 꽂아 물이 흘러가게 한다.

왼쪽에는 동판(銅板)을 설치하여, 판면에는 구멍 12개를 뚫어서 탄환만한 구리구슬을 받도록 한다. 오른쪽에도 동판을 설치하고, 판면에는 25개의 구멍을 뚫어, 계란만한 큰 구리 구슬을 왼쪽과 같이 받게 한다. 판()은 모두 12판인데, 절기에 따라 맞춰 쓴다.

파수호에서 흘러내린 물이 수수호에 내려서 모이면, 떠 있던 살대[浮箭]가 점점 올라와서 시간에 따라, 왼쪽 동판(銅版) 구멍의 기계를 건드려, 작은 구리 구슬이 떨어져 내려서 구리 통에 굴러 들어가게 된다. 구멍을 따라 떨어져서 그 기계를 건드리면, 기계가 열리고, 큰 구슬이 떨어져 자리 밑에 달린 짧은 통에 굴러 들어가서 떨어지면서 숟가락 같은 기계를 움직인다. 그러면 기계의 한 끝이 통 안으로부터 자동으로 시간을 맡은 십이지신의 팔을 쳐 종이 울리게 된다. 경점도 원리는 동일하며, 종이 아니라 북을 올리고, 초점(初點)은 징을 울리게 된다.

지금 남아 있는 물시계는 쇠구슬이 굴러 조화를 이루던 부분이 없어진 채, 물통 부분들만 남아 있다. 청동으로 된 파수호는 지름 93.5㎝, 높이 70.0㎝이며, 수수호는 지름 46.0㎝, 높이 40.5㎝이다. 수수호가 놓였던 돌 받침대는 창경궁 명정전 뒤에 2개가 남아 있다고 한다.


유체역학의 관점에서
시계로서의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수수호에 떨어지는 물의 속도가 일정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베르누이방정식을 이용하여 물의 속도를 나타내 보자(물의 이동 속도가 아주 빠르지 않기 때문에 물을 비압축성으로 가정한다.)


물통의 높이가 아주 높지 않다면, 물의 위쪽 표면에서의 기압(P1)과 아랫부분인 물이 흘러내리는 부분의 기압(P0)이 같다고 근사할 수 있다. 따라서 방정식은

또한 물의 위쪽 표면에서 흐르는 속도는 아랫부분에서 물이 나가는 속도와 비교하면 아주 작으므로 무시하고(V1=0), 물이 나가도록 뚫린 구멍의 위치가 바닥에 놓여있다(h0=0)고 하면 방정식은 다음과 같이 된다.
따라서 물이 나가는 속도는 통의 형상에는 무관하며, 물의 높이에 의해 결정된다.
또한 속도가 결정되면 구멍의 크기에 의해서 Volume flow rate가 결정되고, 물이 빠져 나오는 양을 계산할 수 있다. 그러므로 수수호로 들어가는 물의 속력이 일정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작은 파수호의 물의 높이가 일정하게 유지되면 된다.

작은 파수호의 물의 높이가 일정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큰 파수호에서 공급되는 물의 양이 일정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큰 파수호의 물의 높이가 일정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큰 파수호의 물의 높이를 일정하게 유지시켰을지 추론해 보자.(물론 문헌을 찾아보면 나오겠지만)

지금처럼 물을 일정하게 유지시킬 수 있는 상수도 시설(수도 꼭지)가 있었다면 쉽게 유지할 수 있었겠지만, 그렇지 못한 과거 상황을 고려해 보면, 물시계의 정확도는 물을 퍼다 담는 공무원의 노동에 의해서 좌우되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적어도 2명이 1개조가 되어서, 한 명이 일정하게 물을 따르고 있는 동안 다른 한 명은 물이 든 항아리를 지게에 지고 뒤에서 대기한다. 앞서 따르고 있던 항아리의 물이 소진되면, 교대하여 두 번째 사람이 일정하게 물을 따르고, 첫 번째 사람은 다시 물이 든 항아리를 가지고 오는 방식… 어디까지나 추측이다.

다른 방식도 가능하다. 
1명의 공무원이 일단 큰 파수호에 최대 눈금만큼 물을 담고 최소 눈금까지 물의 높이가 내려 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물론 짧은 시간은 아니기 때문에 다른 물 항아리를 가지고 올 수 있는 시간은 충분이 확보된다. 표시된 최소 눈금 높이가 되면 가지고 온 항아리의 물을 전부 부으면 최대 눈금에 도달하게 물 항아리를 준비해 두면 된다.

이렇게 하면 물의 속도가 늦어지는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것은 시각 눈금자의 간격을 일정하게 두지 않고, 상황에 맞게 조절을 해두면 된다. 물론 여러 차례의 시행 착오를 거쳐야 눈금의 셋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방식은 큰 파수호의 크기를 아주 크게 제작을 하면 하루에 1번 또는 2번 정도만 엄청난 양의 물을 부어 주는 것만으로 인력 투입을 최소화 할 수 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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